김홍도는 1745년에 태어나서 1806년 이후 어느 해엔가 죽었다.
최근의 학자들은 1806년 경에 죽은 것으로 추측한다.
김홍도는 지금 그의 그림으로 전하는 그림만 500점에 육박하고
그 중에도 다수의 진작과 걸작이 있다.
김홍도는 한국 회화사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양과
질 높은 그림들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김홍도의 부인이 누구이고
김홍도가 말년을 어떻게 보내다가 언제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다만 정조가 돌아간 이후, 불행하고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다가
운명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게 전부이다.
우리는 김홍도의 얼굴조차 알지 못한다.
무수히 많은 서양화가들이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대부가 아닌이상
스스로의 초상을 남기는 일이 없었으므로
김홍도는 무수히 많은 그림을 그려내면서도
자신의 초상화는 그리지 않았다.
조선시대 화원에 대해서 알길은 막막하다.
요즘 사람들이 신윤복이 단 두줄 남긴 화가라서 여자일지도 모른다고들 말하지만,
조선시대 화원 화가 중 누가 2줄이상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지 의문이다.
김홍도만 해도, 비교적 자료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자료는 미비하기만 하다.
최소한 부인이 누구이고, 언제 죽었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1745년 ~ 1806년?
이 물음표를 볼때마다 안타깝기만 하다.
당시의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화가의 죽음을 왜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화원을 존대하는 시대가 아니었더라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인가.

김홍도. 군선도. 부분. 1776년, 지본수묵담채, 132.8 × 575.8cm,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

김홍도. 군선도 부분. 1776년, 지본수묵담채, 132.8 × 575.8cm,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

김홍도. 사녀도. 1781년, 지본담채, 121.8 x 55.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 과로도기도. 견본담채, 134.6 x 56.6cm,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송하맹호도. 견본수묵담채, 90.4 x 43.8cm, 호암미술관 소장.

송하맹호도 부분.

김홍도. 삼세여래체탱. 1790년경. 견본채색, 440 x 350cm, 화성 용주사 소장.

김홍도. 환어행렬도. 1795년경. 견본채색, 156.5 x 65.3cm,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
김홍도는, 정조 재위 동안, 줄곧 아주 중요한 국책사업에만 참여하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사도세자 릉의 이전이었고, 거기에 관한 많은 사업을 벌이게 되는데,
이 환어행렬도는 정조의 어머니인 해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면서도,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지극히 보여주는 사업의 일환으로
사도세자의 릉이 있는 화성에서 홍씨의 환갑잔치를 열고 거기에 대해 남긴 기록화이다.
그 동안의 기록화가 상당히 까다로운 격식하게 제작되어서
매우 경직된 화면을 보여줬던 것에 비해,
이 그림은 매우 율동적인 행렬장면을 보여준다.
행렬장면은 변화무쌍하고, 장렬하다.
아마도 밑그림은 김홍도가 그리고,
김득신 등의 당대 최고 화원들이 투입되어 완성한 그림인 듯 한데,
단원이 51세가 되던 해의 작업으로
그의 인생에 둘도 없이 영광되고
거대한 작업이었다.

김홍도. 송하취생도. 지본담채, 109 x 55cm, 서울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김홍도. 주부자시의도. 1800년, 견본담채, 125 x 40.5cm, 호암미술관 소장.

김홍도. 주부자시의도. 1800년, 견본담채, 125 x 40.5cm, 용인 호암미술

김홍도. 삼공불환도. 1801년, 견본수묵담채, 133.7 x 418.4cm,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

김홍도. 고사인물도 중 무이귀도. 지본수묵담채, 111.9 x 52.6cm,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주상관매도. 지본담채, 164 x 76cm, 개인 소장

김홍도. 마상청앵도. 지본담채, 117.2 x 52cm,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절로도해도. 지본담채, 105.5 x 58.3cm,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기노세계련도, 1804년, 견본담채, 137 x 53.3cm, 개인 소장.
기노세계련도 부분. |